걷기 시작과 자기인식의 관련성

아기가 처음으로 두 발로 일어서는 순간, 부모는 벅찬 감동을 느낍니다. 하지만 아이의 ‘첫 걸음마’는 단지 신체 능력의 발전을 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걷기 시작한다는 건 곧 아이가 자기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심리적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아기의 걷기 시작 시기와 자기인식의 발달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정서적 지지와 관찰의 방법을 따뜻하게 나눠보려 합니다.

‘걷는다’는 건 ‘나는 나’라는 감각의 시작입니다

둘째 아이가 생후 13개월쯤 처음 걸었을 때, 저보다 아이가 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아이는 '무언가 새로운 세상을 접했다'는 듯 두 눈이 반짝였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뭔가를 알아차리는 듯 보였죠. 아기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건 단지 신체 능력이 발달했다는 의미를 넘어서, 자기 자신을 외부 세계와 구분 짓는 사고, 즉 자기인식(self-recognition)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생후 첫 해 동안 아기의 인식은 주로 ‘엄마’와 ‘자기’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부모와 자신을 하나의 유닛처럼 인식하던 아기가 어느 순간부터 “내가 움직이면 무언가 달라지고”, “내가 원하면 그쪽으로 갈 수 있다”는 자기 주도적 사고의 틀을 형성하기 시작하죠. 걷기는 바로 그 사고의 물리적 표현입니다.

심리학자들은 걷기 시작한 이후 아이가 거울 속의 자신을 인식하는 시기가 함께 도래한다고 설명합니다. 걷기를 시작하면서 아이는 자신의 신체가 공간과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자기 중심성(Egocentrism)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욕구가 서서히 자라나는 것이죠.

이처럼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공간과 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체험하는 행위입니다. 아이의 걸음걸음 속에는 “나는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야”라는 자기 확인의 감정이 담겨 있는 것이죠. 그 순간을 지켜보는 부모는 아이의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걸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걸음마 시기, 독립성과 분리의 시작

걷기 시작하는 시기는 아이에게 독립성과 분리를 경험하는 첫 관문입니다. 그동안 엄마 품에서만 세상을 관찰하던 아기는 이제 두 발로 걸으며 세상과의 첫 대면을 시작하게 되는 거죠. 바로 그 시점에서 아이는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하게 되고, 이는 곧 정서적으로도 큰 전환점을 가져옵니다.

저는 둘째 아이가 걷기 시작한 직후, 분리불안이 더 심해졌던 경험이 있어요. 아이가 저를 바라보며 걷다가도, 어느 순간 멈춰 서서 눈치를 살피고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된 건, 걷기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고, 동시에 그 분리가 주는 낯선 감정과 불안을 마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아이가 자꾸 부모에게서 떨어져 보려고도 하고, 반대로 갑자기 매달리기도 하며 감정의 널뛰기를 보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아이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아직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 자주 확인받고 싶고, 보호받고 싶어집니다.

이럴 때 부모로서 중요한 건 ‘붙잡기’보다 ‘존중하기’입니다. 아이가 가려고 하면 한 발짝 뒤에서 응원해주고, 멈춰 설 때는 따뜻하게 다시 안아주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넌 아직 어려, 위험하니까 걷지 마’보다 ‘엄마가 여기 있어. 필요하면 돌아와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이에겐 훨씬 큰 힘이 됩니다.

걷기 시작은 곧 자율성의 싹이 튼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자율성은 부모의 따뜻한 시선과 지지 속에서 자랄 때 비로소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아이가 한 발짝 내딛을 때, 부모도 함께 감정적으로 한 발 물러나 주는 연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걷는 아이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부모와의 관계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깁니다. 이전엔 보호자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관계가, 이제는 아이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쌍방향 소통’의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걷는 아기는 단지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의사 표현과 감정 전달을 걷기라는 수단을 통해 드러내기 시작한 존재입니다.

제가 둘째 아이와 가장 많이 눈을 맞추게 된 것도 걷기 시작한 그 무렵이었어요. 아이는 걷다가 제가 보이지 않으면 돌아서고, 멈추고, 다시 확인하고, 뛰어오고. 이 모든 행동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엄마, 나 여기 있어. 나 혼자 해봤어. 봤어?”라는 자기 표현의 연속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죠.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가거나 실내에서 걷기 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자기 방식’을 갖게 됩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만질지, 어떤 속도로 걸을지를 스스로 결정하려 하죠. 이때 부모가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면 아이는 위축되고, 자율성이 억제될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아이가 선택하는 길을 따라가 주고, 충분히 탐색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아이의 자기 인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걷기 시작한 아이와는 놀이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앉아서 놀던 단계에서 몸 전체를 활용하는 활동으로 전환되며, 놀이를 통해 아이는 자기 존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숨바꼭질, 따라걷기, 터널 통과하기 같은 신체 중심의 놀이가 아이의 ‘자기’에 대한 감각을 키워주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시기의 부모는 ‘안전장치’이자 ‘관찰자’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너무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늘 곁에 있다는 확신을 주는 존재. 그게 바로 아이가 걸음을 내딛으며 가장 필요로 하는 ‘든든한 응원자’입니다.

아이의 첫 걸음을 마음으로도 함께 걸어주세요

아이가 걷기 시작하는 그 순간은, 단지 몸의 변화만이 아닙니다. ‘나는 나구나’라는 자각의 첫 단계, 자기인식의 싹이 트는 소중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부모가 어떻게 바라보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을 형성해 갑니다.

무조건적인 보호가 아니라 존중과 기다림으로 아이의 독립을 응원해 주세요. 때로는 아이보다 더 큰 용기가 부모에게 필요하다는 걸 저 역시 두 아이를 키우며 절실히 느꼈습니다.

아이가 한 걸음 내디딜 때,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오늘도 그 작은 발걸음을 따뜻하게 지켜봐 주는 당신, 참 고맙습니다.

아이는 앞으로도 수많은 ‘첫 걸음’을 내딛을 거예요. 말을 시작하고, 친구를 사귀고, 마음을 표현하는 것까지—그 모든 시작에 지금 이 작은 발걸음이 연결되어 있답니다. 그러니 오늘 이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기뻐하고, 아이와 함께 오래오래 기억해 주세요. 부모가 함께해주는 그 따뜻한 기억은 아이의 마음속에 평생을 지탱해 줄 자양분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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